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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시평―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거리는 「말」이다―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음악 시평―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거리는 「말」이다― 音樂時評―詩人에게 있어서 가장 苦痛꺼리는 「말」이다―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김관 金管
출처정보 문장 文章
연    도 1940-05 昭和十五年五月
면    수 116 116
기사
詩人에게 있어서 가장 苦痛꺼리는 「말」이다. 詩人이 電報를 치던지 新聞記事를 쓰던지 할때 쓰든 「말」을 詩作에 있어도 고대루 쓰지 않으면 아니되는 悲劇──다시 말하면 詩人專用語를 갖이지 못한데서 오는 呪咀를 詩人은 품고 있다.
詩人에 比하면 確實히 音樂家는 幸福일지 모른다. 누가 들어도 알어듣는 音과, 가지 각색의 音──바이올린 피아노 풀류드·하아프等等 같은것 같고도 모두가 細密케 區別되는 「말」을 音樂家는 專用語로 갖이고 있지아니한가, 그러나 詩人이나 音樂家는 「말」은 달르다해도 같은 不幸, 같은 咽鳴을 나누는한나라의 同族인點에 藝術의 特權이 잇다고 生覺된다.
「헷세」도 그렇한 말을 한것 같지만, 이말을 끄집어낸 理由──動機는 이렇다. 卽 오늘날 朝鮮에 살고있는 音樂家는 自己네의 「말」을 理解할랴 하고, 그 「말」때문에 苦憫하그, 그「말」을 爲하야 遍歷하는 藝術家로서의 氣慨와 自負, 覇氣와 意慾이 欠乏하다는말이다. 구타여 音樂家를 詩人이나 小說家에 比할랴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自己만이 갖인 專用語때문에 그것에 溺愛되고 있어 策專用窓를 직히는 門찍이노릇에 自惚하고 있든 동안, 幽閉된 窓은 다 인 象牙塔이요, 갖어다놓힌 곳은 天幕밑헤베푸러진「써어커스」의「푸로」깜이였다.
新聞紙가 「써어커스」入場券으로 通用되고 쩌─날氏가 音樂天才의 「파도론」노릇을 하는동안 歲月은 흘너갓다. 해가 기우러 夕影 빛이 찾어들때, 비로소 오늘날 우리는 잊어버린 「말」을 찾느라고 窓을 열고 어두운 빛 아래서 허둥지둥한다.
이風景이 틀림업는 今日의 「朝鮮的音樂」의 實相이고 朝鮮樂壇의 實位다.



前者 어느 音樂時評에 말한일이 있어 되푸리하지는 않겠으나 「마이클로폰」的인 音의 氾濫과 聽覺錯倒症을 指摘하고나서 그뒤 다시 生覺하야보니까 그것은 文化的인 面에서만 論難될 問題에 끝일것이아니고 生理, 心理學的인데서도 可히 重大한 命題가 되리라고 推理된것이다. 그러나 이問題는 나로서는 當場 어떻다고할 能力이 없으므고 그저 두기로 하겠으나, 다른 한가지 生覺 할것은「레코오드」「라디오」等, 마이크로폰을 通한 音에 近似해온 人間의 音聲이란것은 뒤집어보면 그러한 機械音이 科學의 힘이 느는데 依해서 加一層, 사람의 소리(肉聲)에 가깝두록 되여가는것이라고도 生覺킨다. 허나 機械音이란것은 肉聲에 對한 一種의 被寫體로 볼수밖엔 없는것으로──이를테면 人像을 寫眞으로 캐취 한것이나 다를것없는것이므로, 암만 極致의 技術을 發揮한다손 치드라도 肉聲은 肉聲, 機械音은 機械音대로 兩立될것이 容易하게 想定된다. 그러므로 結局은 「마이크로폰」을 지나쳐나온音은 「리알·톤」에 對한「안티·테에제」로 登場할수밖에 없이된다. 그러면 그러므로, 實際演奏의 機會를 많이 갖이지못하는代身, 大部分이 「레코오드」같은 機械音樂에 依存할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樂壇의 現狀에서 볼때, 거기서 生起는 音感에 對한 錯倒를 어떻게 解決하야될것인가가 問題된다. 閑散한 市場에는 入荷한다는것이 大部分 통조림(罐詰)뿐이니, 生生한 白菜 파, 무, 고기, 果物等을 어떻게 맛보와야 할것인가가 當面의 問題의 하나다. 이것을 나는 말하고 싶엇든 것이다.



四月洋樂新譜는 三月의 不振에比하면「바리에티」도있고 質노도 살만한것이있다.
첫재 토스카니이니 指揮로된 모오차르트의「交響曲短調」(빅터어盤)는 注目할만하다. 토스카니이니는 現代 指揮者가운데서 第一級에 位하는 사람으로 入神의 技法과 完壁에 다다른 藝術的香氣는 驚異 歎賞케 할따름이다. 元來 指揮者의 「타잎」은 主觀的傾向에 스는 사람과 그反對로 客觀的인 解釋에 置重하는 두가지로 나노와볼수잇는데 토스카니이는 「푸르트벵글러」系流의 레아리스트인點에 特色이 있다. 이번 모오차르트는 토스카니이니의 古典主義에 立脚한 레아리즘이 遺憾없이 發揮된 效果를 갖이고있다.
사우에르 獨奏 봐잉카르트나指揮로된 러스트의「피아노協奏曲第一番」(콜럼비아盤)은 前世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리스트의 高第로서뿐만 아니라 名實이 모두 兼備한 洋琴大家 사우에르의 最近盤으로서 珍奇하고, 그 맑은 터취와, 典雅枯淡한 藝風은 가장 높은 境地의 法悅樂이라 할수있다.
멩겔베르그 指揮로 된 뻬에토오벤의 「交響曲第四番」은 前番 「第八番」과 한가지 浪慢的언 解釋으로 되었으나 그보담도 더한層 優美 輕快한 原曲의 特徵을 再現하고 있다. 原來 이曲은 「에로이카」나「運命」에 比해서 스켈이 적고 平淡한것이여서 英雄的인 「第三」과 深刻한 이데에를 갖인 「第五」사이에 끼여서 必要以上으로 薄待를 받기 쉬우나 이番 멩겔베르그의 「第四番」은 그러한 不名譽를 휘날렸을뿐 아니라 當分은 決定盤이 될것인줄안다.
이밖에 메뉴유힌 兄妹의 뻬에토벤의 「쏘나타G長調」가 있으나 特別히 이盤을 推薦할 强點도 없는것같고, 「라우히하이젠」과 伯林 필·하르모이니 멤베로된 슈우벨트의 「鱒五重奏曲」은 앙삼불과 錄音은 좋으나 에前 「슈나아베르」것에 比하면 藝術的으로 遙色이있어 그것이 難色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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