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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준
구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이    름 한성준 皷手 韓成俊
출처정보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출판부) 朝鮮唱劇史(京城:朝鮮日報社出版部)
필    자 정노식 魚鳥同室主人
연    도 1941 昭和十五年
연    수 254 二五四
인물
皷手 韓成俊
나 이제 朝鮮唱劇史를 編逑함에 堂하여 名唱廣大 男女 아울러 八十餘人을 들어 記錄하였거니와 이에 따라 皷手도 또한 除外할 수 없는 것이다. 어찌 그러냐하면 俗談에 부처님 살찌고 안찌기는 石手匠이 손에 달렸다는 것과 같이 아무리 名唱 광대일지라도 皷手의 한 마치 長短에 그 聲價를 올리고 내리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一皷手 二名唱)이라는 말도 있고 또 「수(雄)皷手 암(雌)名唱」이라는 말도 있다. 朝鮮에 劇唱이 생긴지 二百餘年間 今日의 生存者까지 男女名唱이 近百名이 된 즉 이에 따라 名皷手도 상당한 數字에 達할 것은 想像에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皷手로서 그 姓名을 알린 이는 겨우 宋光祿, 朱德基 이외 別로히 傳한 이가 없으니 어찌 遺憾이 아니랴. 現代에 다행히 韓成俊이라는 한 사람이 있어 皷手로서의 天才를 發揮하여 唱劇界의 一大 助役의 地位를 占領하였으니 이제 그 大略을 紹介하면 아래와 같다.
韓成俊은 忠淸南道 洪域人으로 距今六十七年前 出生이니 八歲때로부터 북채를 잡기 비롯하여 그 外祖에게 배우다가 다시 朴順祚 門下에 들어가 完璧을 이루고 十七歲부터 지난 甲午年까지 皷手로서 十五次의 唱榜을 칠었으며 그 뒤로 金昌煥, 朴基洪, 宋萬甲, 李東伯, 金昌龍, 丁貞烈 等 諸 名唱의 皷手로서 現在 男女 名唱 廣大들의 皷手로 繼續 中이다. 養成한 門徒가 四十餘人에 達하나 그 門墻을 엿본 자는 姜大弘 以外 三四人에 不過하다 한다. 그런데 唱劇의 장당으로는
평다령 중머리 진양조 엇머리 휘모리의 다섯 가지가 있는데 광대의 技倆에 따라 緩急 長短을 任意로 늘이고 줄이고 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韓氏는 춤이 當世의 名舞로 그 弟子가 男女 아울러 二百餘名이 되는데 다 相當이 聲名을 드날리는 축이라고 한다.
춤장단에는
지세장단 쇠장단 고산연불장단 꺽음살푸리 봉동채 밧탕고 살푸리 국거리 타령 等이 있는데 그 중에 몇가지는 여간 皷手로는 이름도 모른다고 한다. 어쨌던 韓成俊과 같은 皷手는 不世出의 技術家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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