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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향
구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이    름 김초향 金楚香
출처정보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출판부) 朝鮮唱劇史(京城:朝鮮日報社出版部)
필    자 정노식 魚鳥同室主人
연    도 1941 昭和十五年
연    수 251 二五一
인물
金楚香
金楚香은 지금부터 四十年前에 大邱에서 났다. 父母의 膝下에서 十三歲까지 잘아나다가 그어머니가 猝然間 病에 걸려 世上을 떠나고 보니 집은 가난하고 아버지되는 이는 將來 家計를 圖謀하여 어린 子息을 養育할 計策은 세우지 아니하고 죽은 안해만 생각하고 失性한 사람 모양으로 그날 그날을 지내니 家計의 前途는 暗澹할 뿐이다. 이러하므로 그는 어린 생각에도 깊이 覺悟한 바 있어 그 父親의 依賴를 떠나서 自己의 運命은 自己 스스로 開拓하리라 決心하고 멀니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열네살 밖에 아니되는 어린 몸으로 千里他鄕에 彷徨하니 그 生疎와 冷落이 얼마나 肅條하였으랴 그리하여 어떤 機會에 光武臺劇場에 들어가서 한 달에 十四圓이라는 月給을 받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게 되었다.
그 薄俸으로도 얼마씩 貯蓄하여 시굴집 늙은 아버지와 어린 동생의 生活을 補助하였다. 이리하다가 雪上加霜으로 그 어머니 小忌날에 自己 아버지마자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어린楚香의 마음은 天崩地蹋의 境遇를 當한듯 하였든 것이다. 初終을 치린 다음에 그 어린 동생도 가치 서울로 다리고 올라오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楚香이 元來 소리에 素質이 있고 刻苦精勵하므로 그 소리는 可謂日就月將으로 進步하였다 當時 國唱으로 一世에 轟博한 金昌煥, 宋萬甲의 指針을 받아 비로소 판소리가 자리를 잡히게 되었다. 이리하여 光武臺에서도 重要한 役割을 맡아 보게되고 名聲은 날로 높아서 女流劇唱家로 한목을 단단히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大邱에서 男女名唱大會를 열었는데 楚香이도 出演하게 되었다. 錦衣還鄕이라 할가 故鄕인 大邱音樂界에서 聲援이 대단하였다. 當時 如流劇唱家로 一世를 風靡하는 金綠珠와 並立하여 數日밤을 가치 하는데 그와 伯仲을 다투리 만큼 잘하였다. 그리하여 金楚香의 名聲이 世上에 알리울 機會를 지은 것이니 時年이 二十餘歲幼齡이었다.
그 後에는 自家獨工으로 精磨精琢하여 熟達에 이르고 名唱丁貞烈門下에서 數朔 聞見을 擴充하였다. 이리하여 今日 女流唱劇界에 있어서 一方의 覇將이 되었다. 그 才質 誠力은 大家의 指針과 尺度를 經由하여서 一器를 일운 것이 아니냐.
李花中仙이냐 金楚香이냐 듣는 사람의 眼目如何를 따라서 各其 取함을 달리 할 것이나 現代女流名唱으로 可謂雙璧이거니와 저의 소리는 抑揚이 過하고 一句 一節에 偏辟히 힘을 쓰므로 全體를 統括하는데 虛遺가 없지 아니하다. 그리고 人爲的에 너머 흘러서 不自然한 點이 많은만큼 이것이 그의 大缺點이 아닌가한다.
興甫歌에 長하고 그 特長으로 蓄音機에 吹入된 數種이 世間에 流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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