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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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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구분 |
표준화 정보 |
원문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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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박기홍 |
朴基洪 |
출처정보 |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출판부) |
朝鮮唱劇史(京城:朝鮮日報社出版部) |
필 자 |
정노식 |
魚鳥同室主人 |
연 도 |
1941 |
昭和十五年 |
연 수 |
162 |
一六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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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基洪 「東便」
朴基洪은 全羅道人이다 李捺致 金昌煥과 姨從間이다 慶尙道 咸陽 靑松 等地에서 살았다 初年에 朴萬順 手下에서 指針을 받다가 後에 鄭春風 門下에서 多年 專攻하여 大家를 完成하였다. 그는 堂堂한 東派의 魁傑이라기보다 朴萬順 鄭春風 去後 高宗時代로부터 近代에 이르러 有史百年인 東派의 法統을 혼자 두 손바닥 우에 받들어 들고 끝판을 막다싶이한 宗匠이다. 宋萬甲 全道成 李東伯 劉成俊 等의 先輩로서 其中 宋李와는 種種 同席하여 소리를 하였다. 中年에 大邱 某家에서 宋李와 가치 소리를 하게 되었는데 朴先宋後로 順序를 定하였다 宋이 말하기를 「朴의 뒤를 따라서 하면 좔축이 되어서 任意로 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聽衆이 七零八落 하여서 소리할 興味가 나지 아니함을 어찌하랴」 하므로 宋先朴後로 順序를 바꾸어서 宋이 먼저 소리를 하는데 朴은 옆에 앉아서 듣고 나서 宋더러 「장타령이 아니면 念佛이다 名門 後裔로 傳來 法統을 崩壞한 悖戾子孫이라」고 酷評하여 宋은 「古法에 拘泥하는 것보다 時代에 順應하는 것이 適當하다고」 謀避하였으나 國唱으로 一世를 울리는 宋으로도 오히려 朴의 앞에서는 敢히 고개를 들지 못한 것을 보면 氏의 抱負와 技倆의 如何는 듣지 아니하여도 可히 推測할 수 있다. 말이 暫間 빗나갔지만 宋의 뒤를 따라 朴이 出場하여 소리를 하는데 처음에는 淡淡히 아무 興味가 없는 態度로 하여 소리가 싱거웁기 짝이 없다. 聽衆은 厭症이 나서 하품과 조름이 나올 지경이다. 그리하여 중판쯤 이르더니 소리는 漸漸 興味있게 되어간다. 난데없는 딴청이 뛰어나오기 시작한다. 그 特色인 聲調를 한 마디 뽑아 질러내니 宛然히 碧空에서 떨어지듯 한다. 場內 空氣는 變換하여 하품하고 졸든 看官들은 귀를 번쩍 들고 지수는 소리 左右에서 쏟아저 나온다. 緩急長短 抑揚反覆을 法度에 맞도록 唱去唱來할 제 듣는 사람의 精神을 昏倒한다. 그리하다가 소리는 다시 漸漸 淡泊無味하게 된다. 이러한 製作으로 操縱하면서 達夜토록 繼續하였다 한다. 朴은 이러한 手法이다 神奇卓異非至人이요 濃肥辛甘非眞味라 至人只是常이요 眞味只是淡이라 淡淡然 冷水的으로 坦坦然 大路的으로 하다가 어느 地境에 이르러서 그 어떤 特調를 發揮하는 式이다 이것이 東派의 本領인 同時에 自家의 特徵이다.
朴은 소리 금을 하고 소리하는 사람이다 換言하면 五拾圓이면 五拾圓만치 百圓이면 百圓만치 밖에 아니한다는 말이다. 金의 多少를 計較하여서 技藝의 程度를 高下하여 그 輕重을 自由自在로 表現함이 力量과 抱負의 浩大함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냐. 朴氏 唱劇調에만 卓拔할 뿐 아니라 文識이 優餘하여 四律 一篇을 能히 얼거서 當場축돌님의 塞債을 하고 時調 歌詞 玄琴 伽倻琴 乃至 피리 저 해적 할 것 없이 無不精通으로 各各 一家를 完成하였고 玄琴 伽倻琴은 他人에게 많이 敎授하였다 한다. 통틀어 말하자면 朝鮮音樂에 있어서는 絶倫한 天才와 偉大한 抱負를 갖었든 것이다. 朝鮮聲樂과 音律에 見識이 있는 사람으로 朴과 從遊한 이는 如出一口로 無不歎服이다. 後輩 宋萬甲 李東伯 金昌龍은 「歌神이니 一言半辭도 評을 加할 수 없다」하고 十餘年 相從하던 玄石年은 歌仙으로 評한다.
그 生涯가 淡泊하고 持身이 謹愼溫和하였다. 酒는 偏嗜하되 色에는 가장 淡泊하여 一生을 通하여 路柳墻花를 一次도 折取한 일이 없었다고 知舊들은 그 美德을 讚稱한다. 並世한 大邱名妓鸚鵡가 戀情을 屢訴하였으되 終是拒絶하여서 鸚鵡는 그 反感으로 到處에 惡評 中傷하므로 當時 斯界에 있어서 一種笑話題가 되었든 것이다. 春香歌 赤壁歌에 特長하고 赤壁歌 中 三顧草廬 長板橋大戰 華容道場面에 이르러서는 神出鬼沒한 技藝를 發揮하였다 한다 (李東伯 金昌龍 談) 그 더늠으로 赤壁歌 中 曹操軍士 思鄕歌 一篇을 左揭하노라.
「이때에 月明星稀하고 烏鵲南飛라 寒風은 蕭瑟하고 江聲은 오열한데 沙場에 앉은 軍士 酒肉을 飽食彌滿하나 往往히 愁心겨워 各心所願으로 思鄕曲 슬피 울 제 父母그려 우는 놈 同生그려 우는 놈 子息그려 우는 놈 안해 그려 우는 놈 이야기로 우는 놈 투전 하다 다투는 놈 잠에 지저 총 끝으로 대고 섰고 어떠한 군사는 벙치 버서 들러 메고 思鄕曲 슬피울 제 「어화 저 烏鵲아 네 어디로 向하느냐 七月七夕 머렀으니 銀河水 깊은 물에 牛女星 可憐하고 江南의 기러기 짝을 잃고 우는 소래 鷄鳴山 秋夜月에 思鄕함과 같다마는 故鄕消息 네 알소냐 高堂上 鶴髮兩親 離別한지 멧해 런고 父兮여 生我시고 母兮여 育我시니 欲報之德인댄 昊天罔極이로구나 우리 父母妻子 千里戰場에다 나를 보내고 오날이나 消息올가 래일이나 奇別올가 日落西山 黃昏될제 倚門望이 멧 번이며 바람 불고 비 죽죽 올제 依閭望이 멧 번이런가 조총 환도 들러메고 陸戰水戰 섹여 할 제 生死가 朝夕이라 만일 客死 하거드면 骨暴沙場 드러나서 烏鵲의 밥이 된들 뉘라서 휘여 날여주리 애고 애고 설니우니」 한軍士 한숨 쉬고 눈물지며 하는 말이
「너도 설다 하려니와 네 내 서름을 드러봐라 八十當年 우리父母 老病이 孔極하와 晝宵侍湯 汨沒터니 兵亂이라 웨난 소래 精神없이 일어나서 나의 事情 迫切하여 軍服 입고 槍잡으며 父母前에 下直하니 우리 父母 나를 잡으시고 울며불며 하신 말씀 「나의 病이 깊고 깊어 朝夕難保 어려운데 千里戰場 네 나가면 뉘라 다시 救護하리」 痛哭으로 離別한지 지금이 몃해런고 撫西山之頹日하고 望太行之孤雲이라 夢中에나 도라 가서 病든 父母 다시 보면 餘恨이 없을련만 愁心이 疊疊하여 잠 못 일우니 잠을 일워야 꿈을 꾸지야 야속함도 야속하다 思親思家 이 事情을 눌 다려 원정할고 애고애고 설운지고」
또한 軍士 이르는 말이
「너는 父母를 생각하니 情意도 올커니와 孝行之心 奇特하다 내 서름도 들어 보소 나는 남의 五代獨子로 열일곱에 장가들어 近五十이 되도록 膝下에 一點 血肉이 없서고나 夫婦 每日 恨歎터니 子息을 빌려할 제 온갖 功을 다 드려 各山大刹 靈神堂과 古廟䕺詞 城隍堂이며 石佛 彌勒菩薩前에 노구마지 집짓기며 窓戶施主 因燈施主 十王佛供 七星佛供 袈裟施主 羅漢佛供 天龍마지 山祭하니 심든 남기 꺾거지며 공든 塔이 묺어지랴 없다 우리집 마누라가 그날부터 胎氣가 있었구나 十朔胎候 排設할제 席不正不坐하고 割不正不食하고 耳不聽淫聲하고 目不視邪色하여 十朔만에 生男하니 얼굴은 冠玉이요 風采는 杜牧之라 열손에 떠받드러 金玉같이 사랑한정 三七日이 다 지나고 五六朔이 넘어가니 터덕터덕 노는양 빵긋빵긋 웃는 양 엄마 압바 도리도리 웃고 품에 앵길 적에 감을 사서 빨리 우며 晝夜 사랑 지극터니 뜻밖에 이 亂離를 當하였구나 祠堂門 여러 놓고 痛哭再拜 下直하고 千里戰場 나왔으니 日不日 戰爭不息 어느 날에 돌아가서 그리든 나의 아들 무릎 우에 앉쳐 놓고 사랑으로 얼너 볼고 애고애고 내일이야」
또 한軍士 하는말이
「네 서름 可笑롭다 子息을 그려 우니 後事를 생각하는 말이로다 마는 네 내 서름을 드러 보라 前에도 없고 後에도 없고 萬古歷代에도 없는 서름이로다. 三十後 장가를 가니 그날밤이 첫날밤이라 洞房華燭 깊은 밤에 두리 안고 마주 누워 新情이 未洽할제 遠近村 닭이 울제 兵亂이라 웨는 소래 깜작 놀나 일어나니 精神이 앗득한 중 戎衣戰服을 떨처 입고 千里戰場 나올 적에 그새에 情이 드러 落淚送別 하는 구나 나의 사랑 울지 말고 잘 있거라 羅衫玉手 드러 내여 울며 잡는 소매 薄不得己 떨떠리니 更把羅衫 하는 말이 인제가면 언제올가 날이나 일너주오 千里前場 가는 郎君 어느 날에 다시 볼가 痛哭으로 離別한지 이제가 멧해런고 玉窓아래 櫻桃꽃은 멧 번이나 피였으며 섬 밑에 찬 梅花는 눌 다러 무러나 볼가 東山의 높은 독은 望夫石이 되어있고 南山의 杜鵑鳥는 不如歸라 슬피 운다. 長安一片 밝은 달은 擾衣聲 愁心이오 關山萬里 찬바람은 落梅曲이 설어 워라 雲霧에 싸인 달은 傷心色을 띠어있고 遠浦의 여을소리 斷腸聲和答한다 지내간 밤 꿈을 꾸니 그리든 우리 님이 나를 보려고 왔든구나 반갑고 기뿐 마음 鎗劒으로 벼개하고 帳幕으로 니불하여 萬端情懷 한참할 제 무상한 囉叭소리 깜작 놀나 일어나니 님은 간 곳 없고 옆에 서는 帳幕대만 와질끈 안고 누었으니 허망키도 허망하다 이처럼 허망한 세상이 또 있는가 솟아나는 肝臟눈물 바다가 되리로다 애고애고 설은지고」
이리 한참할 제 한軍士가 내다르며 이놈 저놈 다 듯거라 우리 丞相은 大軍을 거나리고 千里戰爭에 와 天下大事를 바라는데 너히 놈은 어찌 우름을 우난다 우름을랑 긋치고서 나의 싸홈 타령이나 드러보라
「軒轅氏 始用干戈 炎帝로 판처싸홈 能作大霧 蚤尤將師 사로잡든 싸홈 周나라 衰한 天地 紛紛하다 春秋싸홈 六國싸홈 蜂起之將 撓亂할제 楚漢風塵 八年싸홈 太公呂后 잡히것다 西北大風 淮水싸홈 七十餘戰에 功이 없다 楚覇王의 욱격싸홈 馬上의 天下얻은 漢太祖의 智慧싸홈 統一天下 언제하리 魏漢吳 三國싸홈 東南風이 솰솰불면 위터롭다 赤壁싸홈 싸홈 다시 말고 功成身退하고지고」
또 한 군사 하는 말이
「에 아서라 싸홈 타령 다시 말고 滌盡萬愁無過酒로다 含胞叩腹 먹었으니 없든心情 절로난다 우리 丞相은 죽고 살고 故鄕에나 가서 질기든 우멍거지조개 국이나 실것 먹고지고」
한 군사 내달으며
「여바라. 이놈 못 쓰겠다 우리 몸이 軍士되어 竭忠報國이 한데 兒女子만 생각하고 淫蕩한 말만 하니 陣中에 不當하다」하고 등 미러 쫓아내니 저놈 나가며 하는 말이 「이 近來에 眞男眞女 덧붓치기 아들놈덜 많이 보겠군」
또 한軍士 한숨 쉬고 눈물지며 슬푼 形狀으로 슬피 앉어 하는 말이
「너히들이 아즉은 술잔 먹고 才談 驕談 壯談 悖談 한다마는 明日 大戰時에 견대여들 보아라 勝負를 뉘 알소냐 柔能制剛하고 弱能制强은 兵家의 證驗이오 勝敗興亡은 在德이오 不在險이니 聖君德將의 하올배라 勝負間에 橫死急死誤死卽死奔死할제 뉘 능히 사라나리 애고애고 설운지고」
또 한軍士 나서드니
「여봐라 魏兵軍卒들아 父母妻子 離別하고 千里戰場 나온몸이 事情은 一般이라 大丈夫 世上에 나서 爲國竭忠 하올진대 腰下 三尺 드는 칼로 漢將의 머리 덩그렇게 버혀 들고 回軍 吹打 勝戰鼓에 故鄕에 돌아가서 그리든 父母妻子 愛情하든 내 眷率 반갑게 맛나 질길 적에 그 아니 爽快하리 너히놈이 좀놈일다」 한참 이리 분주할 제」 云云 (宋萬甲 全道成 李東伯 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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