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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풍
구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이    름 정춘풍 鄭春風 비가비
출처정보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출판부) 朝鮮唱劇史(京城:朝鮮日報社出版部)
필    자 정노식 魚鳥同室主人
연    도 1941 昭和十五年
연    수 74 七四
인물
鄭春風 비가비 「東便」
鄭春風은 憲哲高三代間 人物이다. 忠淸道 어느 儲家에서 出生한 兩班광대로서 權生員後第一로 屈指한다. 朴萬順, 金世宗, 李捺致等과 同時하여 一世를 울린 大家이다. 元來 儒家에서 生長하여 進士科에 登한만큼 漢學의 造詣가 相當하고 唱劇調에對한 理論과 博識에在하여는 古今을 通하여 南에 高敞申在孝요 北에 鄭春風일것이다.(但申在孝는 理論으로 勝하고 鄭春風은 實際로 勝하였다) 實際家로 當時에 있어서 朴萬順, 金世宗, 李捺致等과 互有長短이려니와 그學識의 優餘함과 理論의 高尙함을 저네들과 不可同日語요 才人階級에서 出生한 저네들과 兩班階級에서 出生한 鄭春風과는 좋은 對照이다. 鄭氏性格이 踈放하여 事物에 碍滯가 없을뿐더러 不遇磈落하여 弄世的으로 春風이라 自號하고 到處春風으로 生涯를 마첬다 한다. 광대로서 雅號를 行世한이가 春風이 嚆矢일것이다. 儒家出身으로 唱劇調로 他人에게 學得한것이 아니고 그藝術的天才는 聞一知十하여 自家獨工으로 古今을 綜合하여 마침내 大家를 일우웠던 것이다. 唱調는 羽調를 主體로하고 製作은 東派가 分明하나 自身의 自負가 强한만큼 超然而居하여 東이니 西이니 派에 屬함을 不屑히 역였었다. 大院君의 知遇를 얻어서 一時는 大院君의 舍廊은 自己 舍廊같이 알고 從遊하였다고한다. 歌調와 音律에도 精通하여 亦是 一大家를 일우웠으며 赤壁歌에 特長하였고 그唱法은 首門徒인 朴基洪에게 많이 傳授하였다. 晩年에 全羅北道礪山郡에 移居하다가 死하니 年이 六十八世이었더라.
더늠으로 後에 傳한것은 瀟湘八景短歌인데 朴基洪, 宋萬甲에게 傳唱하여 現下광대와 妓生들의 盛唱하는바이다.
瀟湘八景
一, 山岳이 潛形하고 陰風이 怒號하여 水面에 듣난 소래 千兵萬馬 서로 마저 鐵騎刀鎗 이었는듯 簷下 끝에 急한 形勢 百尺瀑布 쏘와 오고 대숲울 흩뿔일 제 皇英의 깊은恨을 잎잎이 呼訴하니 「瀟湘夜雨」라 하는데요.
二, 七百平湖 맑은물은 上下天光이 푸르렀다. 어름박휘 문득 소사 中天에 徘徊하니 桂宮姮娥丹粧할제 새 거울을 여렀난듯 寂寞한 魚龍들은 勢를얻어 出沒하고 楓林에 歸鴉들은 빛을 놀라 살아지니 「洞庭秋月」이 이아니냐.
三, 煙波萬頃은 하늘에 다았는데 오고가는 商賈船은 順風에 돛을 달아 북을 둥둥 울리면서 어기야 더기야 저어갈 제 보아 알든 못하여도 다만 앞에 섰던 山이 문득 뒤로 옮아가니 「遠浦歸帆」이 이 아니냐.
四, 水明沙明兩峠苔에 不勝淸怨卻飛來라 날아 오난 저 기러기 갈순 하나를 입에다 물고 一點二點 點點마다 行列지어 떠러지지니 「平沙落鴈」이 이아니냐.
五, 隔峠漁村兩三家에 밥 짓난 煙氣일고 返照入江飜石壁은 거울낯을 여렀난듯 罷釣歸來 배를 매고 柳橋邊에 술을 사니 松林에 던진 새는 지는 해를 세월울고 碧波에 뛰는고기 비낀 볕 맞어 노니 漁村落照 이 아니냐.
六, 天地자욱 紛紛霏霏 나리는樣은 粉蝶이 싸오는듯 委曲한 늙은 가지 玉龍이 서려있고 奇恠한 성낸 바위 鹽虎 엎쳤난 듯 江山이 變化하여 銀世界를 지었으니 「江天暮雪」이 이 아니냐.
七, 淸淡한 새얼굴은 가난구름 머무난 듯 奏川에 고흔 깁 스무자 버려있고 롱사롱수 뵈일 적에 山市晴嵐 求景하고.
八, 萬里靑山이오 一片孤城이라 달 떨어지자 가마귀 가옥가옥 서리 가득한 하날에 난데 없난 쇠북소래 客船에 뎅뎅 울려오니 「寒寺暮鐘」이 이아니냐. 宋萬甲 倣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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