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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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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구분 |
표준화 정보 |
원문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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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송광록 |
宋光祿 |
출처정보 |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출판부) |
朝鮮唱劇史(京城:朝鮮日報社出版部) |
필 자 |
정노식 |
魚鳥同室主人 |
연 도 |
1941 |
昭和十五年 |
연 수 |
35 |
三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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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光祿
宋光祿은 純祖時代에 全羅北道 雲峰郡에서 出生하여 憲宗時代까지 울였든 名唱인데 朝鮮歷代名唱으로 第一指를 屈하는 宋興祿의 아우이다. 當時에 興祿은 國唱이고 그 아우 光祿은 鼓手였다. 그 時代에는 광대와 鼓手의 差別이 퍽 甚하였든 모양으로 그 兄 興祿은 名唱으로 어듸 불리여 가게 되면 으레히 보교를 타고 그 아우 光祿은 북을 메고 그 뒤를 딸은다. 어늬 權勢家 或은 當豪家에라도 들어갈 때에 보교에서 네리는 威儀가 堂堂한 그 兄과 북을 메고 徒步로 그 뒤를 딸는 行色이 초라한 自己와의 差異가 如何한가 座席에도 上席末席의 差別이 있고 飮食床에도 亦是 그러하였다.
소리를 끝맡이고 돌아가는 때에도 十分一의 報酬쯤 받게 된다. 그 時代에는 광대는 優待를 받고 鼓手는 언제든지 下待를 받는 處地에 있었든 모양이었다. 이렇게 됨으로 아무리 兄弟間이지만 마음이 좋을 理가 없다. 兄弟間인 까닭에 창피하고 아니꼬운 感情을 오히려 더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光祿이 그 兄의 威勢에 비위가 틀린 적이 어찌 한두 번이였으랴. 이러한 雰圍氣에 衝動을 받었던지 光祿은 어느 날 踪跡을 감추었다. 온 家族이 四方으로 찾었지만 消食이 漠然하였다. 그는 平日에 품었든 鬱憤을 풀기 爲하여 濟州道에가서 萬里滄海를 吞吐할 氣勢로 四五年間 소리工夫를 마음것 하여서 마침내 一大家를 일우었든 것이다. 그 後에 도라와서 名聲은 날로 世間에 높아젔다. 그 兄 興祿과 並肩하여 技藝를 절우웟거니와 매양 興祿의 唱制를 忌憚없이 批評하였다 한다. 春香歌가 長技이였고 더늠으로는 春香歌사랑歌 中
「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찐 앰개를 물어다 놓고 니는 빠저서 먹든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굼니는듯 北海黑龍이 如意珠를 입에 다물고 彩雲間으로 넘노난듯 丹山鳳凰이 竹實을물고 梧桐속으로 넘노난 듯 이리 오느라 오는 태도를 보자 저리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아장아장 거러라 걸는 태도를 보자 빵끗 웃어라 웃는 닙모습을 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내 간간 내 사랑이지 이리보아도 내 사랑 저리보아도 내 사랑 사랑이 모두다 내 사랑 같으면 사랑 걸여서 살 수가있나 어허둥둥 내 사랑 빵긋빵긋 웃는 것은 花中王 모란花가 하로밤 細雨뒤에 반만 피고자 하는 듯 아무리 보아도 내 사랑 내 간간 이로구나」云云 金世宗 倣唱 宋萬甲, 全道成 傳唱 진양조羽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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